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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좋은 글] 친구

[출처] 이지애 아나운서 미니홈피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천 가지 목소리를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영화 '후크'에선 피터 팬 역을 맡아 남자 아이 목소리를 냈고,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선 젊은 여성 목소리로 램프 요정 지니의 대사를 더빙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선 영국 할머니들의 간드러진 말투를 기막히게 재현했다. 심지어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로봇 목소리마저 선보였다. 성(性)의 차이도, 나이의 구별도 잊게 만드는 폭넓은 표현력이다.   

 

윌리엄스가 이렇게 목소리 연기를 잘하게 된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그는 어려서 아주 뚱뚱했다. 또래들은 그를 놀리기만 했을 뿐, 아무도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외아들이라 집에서조차 외로웠다. 그래서 혼자서 여러 목소리를 내며 상상 속의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놀았다. 그게 목소리 연기의 기초가 됐다. 

 

상상만으론 외로웠을까. 진짜 친구가 그리웠을까. 20대 초, 뉴욕의 줄리아드 연극학교에 다니던 그는 룸메이트로 크리스토퍼 리브를 만났다. 그러곤 오랜 우정을 나눴다. '영혼의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진한 우정이었다. 생각해 보자. 어느 정도였기에 '영혼의 우정'이라 불렸을까. 

 

'슈퍼맨' 역으로 이름을 날린 리브는 43세이던 1995년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엄청난 비극 앞에 웃음을 잃은 그 앞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노란 가운을 입곤 병실에 들어와 이상한 러시아 억양으로 횡설수설했다. 그 모습과 말이 하도 우스워 리브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 남자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내보였다. 윌리엄스였다. 웃음을 잃은 친구에게 웃음을 선사하려고 밤새 연습한 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공연을 했다. 리브는 이때를 떠올리며 "나를 웃기려고 애쓴 친구를 보니 앞으로 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리브는 2004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부인인 다나도 폐암에 걸려 6일 남편 곁으로 떠났다. 13세짜리 아들 윌은 졸지에 고아가 됐다. 이 윌을 윌리엄스가 맡았다. 

 

두 번 결혼한 윌리엄스에게는 전처에게서 난 20세 아들과, 지금 부인이 낳은 17세 딸과 14세 아들이 있다. 재력은 풍부하겠지만 다른 아이를 데려와 키우기로 한 결정이 누구에겐들 쉬웠겠는가. 하지만 우정의 힘은 강했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아메리칸인디언의 격언이다.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